밤 늦게 갑자기 카이가 찾아왔다.

" 리쿠, 뭔 생각인건데. "

갑자기 소리친다.

" 뭐냐, 밤놀이냐?"

" 농담은 집어치우고, 제대로 설명하라고. "

내 침대위에 휙 양반다리로 앉는다.

그 뒤.

미나미는 견디지못하고 울면서 유코에게 전화하고, 카이는 유코한테서 연락받고 내게로 온 것 같다.

" 넌 심부름꾼이냐. "

카이가 조용히 휴대폰 꺼낸다.

" 아, 유코? 리쿠 집에 도착했어. · · · · 에? 우선 · · · 한방 때릴까? 알겠어. "

카이가 근처에 있던 점프로 나를 때리려한다.

" 어째서냐고. "

피해다니다가 점프를 빼앗았다.

유코랑의 전화를 끊고 카이가 내쪽으로 방향을 튼다.

" 그래서, 뭔 일이냐, 리쿠 . "

" 그런거야. "

" 왜? 갑자기 헤어지다니. 지난번 그걸 신경쓰고 있는거면, 그건 · · ·. "

" 지난 그건 계기가 되었을지도 모르지만. "

" 모르겠다고, 난. 니가 미나미쨩을 얼마나 좋아하고, 미나미쨩이 리쿠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알고있으니까 말이야. "

" 그 녀석은 · · · , 나를 정말로 좋아 · · · 한걸까 . "

" 무슨 소릴 하는거야! "

카이의 표정이 흉악해진다.

" 임마 진짜 머리 다쳤냐. "

" 그 녀석은 말야. "

내가 심각하니까, 카이도 입을 다문다 .

" 좋아한다고 감정을, 착각하고 있던걸지도 모른다고, 왠지 그렇게 생각되서. "

" 무슨 말이야. "

" 내가 말야, 장난아니게 대시했기 때문에 · · · 자신도 그럴지도 라던가, 그렇게 계속 사귀고, 그게 의무라고 할까 안그러면 안된다고 생각한다던가 · ·. "

" 뭔가, 너말야 어째서 그렇게 부정적인거야. "

" 그 미소를, 봤기 때문일까. "

아직 눈에 밟혀서 떠나지 않는다.

" 그 녀석은 웃어줬으면 해, 언제든지 그런 식으로. 정말 행복해보였으니까 · · ·. 내가 그런 식으로 못했으니까, 지금은, 그게 안되니까 · · ·. "

" 안되는게 아니고, 그 이전에, 리쿠와 있을 때의 미나미쨩, 엄청 웃는데다. "

" 이제 그만둬, 결정한거니까. "

" 지 멋대로구만."

" 나는 이기적인 남자라고. "

카이는 이런이런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얼마만에 알게된건지.

혼자가 된 외로움.

따뜻하게 해주는 사람은.

더이상.

없다.


한동안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았다.

정신이 들면 휴대폰을 든 손이 미나미한테 메일이나 전화를 시도하기도 하고.

정말 헤어진걸까 생각할 정도.

지난 몇달동안 만나는 횟수가 줄었기 때문에, 그것의 연장같은 느낌으로.

그렇지만.

나는 혼자로.

그때부터.

미나미한테서 연락은 없다.

유코와 카이의 쓸데없는 참견은 계속되고 있지만.

미나미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다.

이런 때 까지 .

그 녀석은 내 결정을 존중하는건가.

내 멋대로의 행동을.

나의 이기심을.

눈을 감는다.

그 녀석이 그 남자랑 마주보며 웃는것을 상상한다.

또다시, 내장이 뒤틀릴 것 같지만.

그렇지만.

그쪽이 미나미가 행복하다면.

" 나는 언제부터 비극적인 영웅이 된 건지. "

무심코 내뱉어버린다.


" 안녕 리쿠 "

" 아, 안녕하세요. "

이전의 단골 손님.

" 응? "

" 에. "

" · · · · 헤어졌어? "

무심코 말이 막힌다.

" 그렇구나ㅡ, 드디어 솔로가 된거구나ㅡ, 리쿠. "

물끄러미 쳐다보길래 주춤했다.

" 근데말야 ... "

" 에, 왜요. "

" 솔로가 되는걸 노리고 있었지만. "

" 있었지만? "

" 어쩐지 · · · · 리쿠, 없어보여. "

은근하게 독설을 한다.

" 꽤나 상처받았습니다만. "

" 왜지 · · · 뭔가가 다르단말이지. "

손님은 음ㅡ하며 신음을 한다.

" 옆에 사람이 있을 때는 좋은 남자였는데ㅡ. 무엇이 다른걸까. "

나는 멍하니 서있는 채로.

" 얼굴이 다른걸까, 눈의 힘일까. 사랑의 힘으로 빛나는 타입이구나, 리쿠. "

" 그런 · · · 가요. "

" 누군가를 위해 뭔가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기운이 다르니까말야. "

깨달았다.

그렇다.

내가 파티쉐가 되려고 한 것은.

그 녀석이.

매우 즐겁게 케이크를 먹었기 때문이다.

아무것도 아닌 케이크를.

행복하다, 라면서.

그렇다면 내가.

항상 행복하게 해주겠노라고.

그랬는데도.

입술을 깨물었다.

잃어버린 뒤에 깨닫는 건, 자주 있는 패턴.

직원전용 공간에 들어와서.

주방을 흘낏 본다.

난.

무엇을 위해 저기서.

누구를 위해.





세월이 지나는 건 순식간이다.

나는 여전히 학교와 아르바이트에 쫓기는 나날들.

휴일을 주체하지 못할 때도 있었다.

학교 동아리에도 갔고, 아르바이트 동료랑 놀기도 했다.

거기에는 당연하게 여자도 있고.

몇번인가 유혹당하기도 했지만, 잘 피하는 요령도 있어서.

말하는 행동도, 시선도, 맞장구를 치는 타이밍도, 웃음 포인트도.

다르다.

가진 향기도, 립스틱 색도, 옷의 센스도.

전부 다르다.

다른 것을 원하는 것 처럼, 이게 아니란 것을 깨닫게 된다.

이렇게나.

내 마음은 미나미를 원하고 있는데.

그 녀석은 지금 무엇을 하고있는 걸까.

그저.

웃는 얼굴로 있어주기만 하면.

나는 보답받는 것일까.


" 야, 너말인데, 올해 생일은 어쩔거야. "

" 어쩌다니 · · · , 물어보는거냐, 잔인한 놈이네. "

" 어쩔 수 없으니까 축하라도 해줄까? "

" · · · 미안, 난 남자한텐 관심없거든. "

" 너말야 , 사람이 모처럼 신경쓰고 있는데. "

" 평상시와 변함없이 알바 뛸거야. 생일을 누구에게도 축하받지 못하는 싱글 정도는 세상에 많이있잖아"

" 외롭구만-. "

" 단순히 놀리는거로밖에 안들리거든. "


그 날은 말한대로 알바를 하고.

아아, 별 볼일없는 평범한 하루다.

강한 척, 하는건진 몰라도.

순식간에 타임이 끝났다.

알바를 뛰는시간이 늘어난 것은, 그런 것일지도 모른다.

생각하지 않아도 되니까.

여러가지를.

밖으로 나와서, 한숨을 한 번.

평소대로 걷다가, 몇 걸음 못가서 다리가 멈춘다.

거기있을리가 없는 모습을 발견해서.

오랜만에 보는 작은 모습.

천천히 다가온다.

" · · · 오랜만"

" 미안해, 갑자기. "

미나미는.

머리를 잘랐다.

그것이 몹시 어울려서.

흠칫했다.

" 머리카락 · · · 잘랐네. "

" 에, 아, 응 · · ·. 실연 · · · 했으니까. "

넘어가려는듯이 억지웃음을 보인다.

" 건강 · · · 했어? "

" · · · 뭐 그렇지. 너 · · · 마른거 아냐? "

" 어, 그럴 · · · · 지도 · · · ·. "

대화가 끊긴다.

" 아, 그래, 저, 이거 · · · ·. "

미나미가 손에 들고 있던 작은 봉투를 내밀었다.

" 생일 축하해 · · · ·. "

작은 목소리로 .

조심스런 시선으로.

받는 걸 당혹스러워하니 미나미가 당황해서 입을 연다.

" 아, 그, 깊은 의미는 아니야, 별로. 뭐라고 할까 · · · · 이렇게 되기 전부터, 건네려고 했으니까· · ·. 치, 친구로서? 주는 선물 · · ·. "

말하면 말할수록 뒷말이 늘어난다.

" 고마워. "

솔직하게 받는다.

침묵이 두 사람을 감싼다.

" 너는 · · · · 요새 어때. "

" 아 · · · · ,응. 아르바이트 그만뒀어. "

" 에. "

" 아 · · · · 그래, 원하는 걸 살 수 있었고 · · · · 그냥, 그래. "

" 그래서 · · · 그 · · ·. "

" 누구와도, 사귀고있지 않아. 그런 ..... 그런 기분이 아니라서. "

" 그래도, 너 "

" 스스로의 마음에 거짓말은 · · 하지않아. "

그렇게 단언하고, 미나미는 나를 보았다.

그 눈에 무심코 빨려들 것 같다.

미나미는 나의 시선에 깜짝 놀라며 황급히 시선을 떼내었다.

" 아, 이제, 가볼게. "

" 에. "

" 그럼. "

" 데려다줄게 "

" 괜찮아. "

등을 돌리고.

미나미가 천천히 걸어간다.

멀어지는 등 .

문득 멈춰서서 미나미는 되돌아봤다.

" 저기, 말야 . "

" 응? "

" 만약 ..... 만약 심심하다고 생각해서 · · · , 아무도 · · · 없다면 말야. "

" · · · 아아. "

"언제라도 · · · 메일로도 전화로도 · · · ·. 그 · · · 치, 친구로서"

" · · · 아아. "

내 대답에 미나미는 한번 끄덕이고.

가려고 하다가 다시 되돌아본다.

" 만약 ..... 누군가의 ..... 누군가의 온기가 ... 그리워지면 · · · 그 때는 · · · · · ·. "

사라질 것 같은, 오히려 거의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 그 때는 · · · 언제라도 · · · 좋으니까 . "

미나미의.

작게 쥔 주먹이 떨고있다.

또다시 침묵이 흐르고.

"아, 그, 그럼. "

미나미가 이번에야말로 등을 돌리고 걷기 시작했다.

어째서.

아무런 말도 못한건지.

어째서.

몸이 움직이지 않는지.

나는 멍하니 서서.

미나미의 모습이 작아져 가는것을 배웅했다.